서울에 사는 42세 박**님은 스스로를 "분위기 메이커"라고 자부하는 분이었습니다. 친구들 사이에서는 누구보다 유머 감각이 뛰어나다는 소리를 늘 들었고, 어색한 자리도 금방 풀어버리는 재주가 있었습니다. 그 자신감이 문제였습니다.
첫 만남 며칠 전, 박**님은 비장한 각오로 인터넷 검색창에 "북한 사투리 모음"을 입력했습니다. 몇 가지 표현을 골라 친구들 단톡방에 시험 삼아 써봤더니 다들 "ㅋㅋㅋ 대박이다"라고 반응했습니다. 확신이 생겼습니다. '이 정도면 첫인상은 내 것이다.' 거울 앞에서 표정까지 연습했다고 하시더라구요.
만남 당일, 카페에 먼저 도착해 자리를 잡고 기다리던 박**님. 여성 회원이 자리에 앉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포문을 열었습니다. "동무, 오늘 날씨가 참 좋소이다!" 그리고 스스로 너무 웃겨서인지 히히덕거렸습니다. 여성 회원은 0.5초 굳었다가 짧게 미소를 지었습니다. 박**님은 그 미소를 "성공 신호"로 해석했습니다.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그는 외워온 레퍼토리를 하나씩 꺼냈습니다. "그건 참말이오", "동무가 참 곱소이다", "오늘 만남이 참으로 기쁘오." 본인 혼자 신이 나서 웃었고,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.
하지만 테이블 건너편의 온도는 달랐습니다. 여성 회원의 표정은 대화가 이어질수록 조금씩, 조금씩, 돌처럼 굳어갔습니다. 박**님은 끝내 눈치채지 못했습니다.
그날 저녁, 여성 회원은 담당 매니저에게 연락했습니다. "박**님 만나지 않을 겁니다." 이유를 묻자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. "숨길 필요까지는 없겠지만, 그렇다고 굳이 내세우고 싶지는 않은 과거를 첫 만남에서 웃음거리로 쓰는 분이라면, 상대를 진지하게 생각하시는 분은 아닌것 같아요."
소식을 전해들은 박**님은 "진짜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"라며 매니저에게 하소연했습니다. 사과의 뜻도 전했습니다. 하지만 마음의 문은 이미 닫혀 있었습니다. 의도가 아무리 선해도, 상대방이 받은 상처는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.
시사점
새터민 여성 회원들에게 북한 사투리는 단순한 말투가 아닙니다. 탈북 과정에서 겪은 위험, 가족과의 이별, 낯선 땅에서 말투 하나 때문에 차별받았던 기억, 그 모든 것이 켜켜이 쌓인 언어입니다. 아무리 유머로 포장해도 "당신의 아픈 역사가 나에게는 재밌는 소재"라는 메시지로 읽힐 수 있습니다.
분위기를 풀고 싶다면 공통된 관심사, 따뜻한 질문, 혹은 솔직하게 "저 좀 긴장됩니다"라고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. 준비한 유머가 상대의 상처를 건드리고 있는 건 아닌지,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것. 그것이 진심 어린 첫 만남의 시작입니다. 단톡방에서 웃겼다고 실전에서도 웃길 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.
- 본 사례는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. 다만, 지역과 성명은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.